시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한 번 가야지, 생각은 몇 년 전부터 했지만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물론, 애들이 아직 어려서, 휴가 스케쥴 맞추기가 어려워서, 등등의 핑계가 많았다. 첫 해외 여행지로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다가 접어버리곤 했다. 멀리 가는 건 힘드실텐데, 일본으로? 에이, 그래도 '여기가 다른 나라구나'하고 강렬한 느낌이 있으려면 일본은 좀 그렇지. 스위스 정도는 가야 되지 않을까? 근데 유럽을 여섯 명이 가려면 돈이... 에고, 이건 나중에 애들 놔두고 내가 어머니만 모시고 갔다 오든지 해야지. 여보, 이러다 영영 못 정하겠다. 자기가 혼자 부모님 모시고 일본 온천이라도 다녀올래? 그치... 또 여행 가서 손주들 재롱 보는 게 큰 재민데, 재미없는 아들래미가 모시고 가봤자... 게다가 우리 남편은 뜨거운 물과 증기 속에서 5분을 견디지 못하는 '온천 기피자' 아닌가. 가끔 여행상품 메일 중에 괜찮다 싶은 게 보이면 잠깐씩 생각해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아버님은 결국 수술을 안 하시기로 결정하였다. 다행히 컨디션도 무척 좋으시고, 일상생활도 잘 하신다. 겉보기에는 발병 사실을 알기 전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조금 더 좋아지신 것 같기도 하다. 고민과 갈등의 시간 끝에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내 맘은 좀 바빠졌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어디라도 가자!
그리고, 무수한 검색 끝에 올해 처음으로 나온 '하모니 크루즈' 상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국 국적의 최초의 크루즈선이라는데, 부산과 인천을 기점으로 하여 규슈의 몇몇 도시를 3박4일 혹은 4박5일로 돌아보는 코스였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것이 이동의 부담이 적지만 스케쥴이 일-목 이런 식이라 우리 부부가 휴가를 맞추어 내기 어려웠다. 부산에서 목요일에 출발해서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돌아 일요일에 도착하는 상품 중에, 취항기념 프로모션(20%할인)이 끝나는 4월 마지막주 것으로 골랐다. KTX 타고 부산 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니까. 크루즈는 방 단위로 값을 치기에, 6세 미만의 어린이는 무료라는 것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리하여 부모님은 난생 처음 여권을 만드시고, 나는 3인실 두 개를 예약하고 왕복 KTX를 예매하며 여행준비가 시작되었다.
예약만 해두고 근 한 달을 정신없이 지내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출발 이틀전이었다. 게다가 일정이 꼬여서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부산에서 세시간 뒤에 비행기를 타고 다시 일본으로 출장을 가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려 더욱 정신이 없었다. 날씨를 검색해보니 여행기간 내내 일본은 비가 온댄다. 아, 첫 여행이 재밌고 즐거워야 할텐데, 아, 어쩌지, 어쩌지~ 덜컥 후쿠오카에서는 자유여행을 하자고 해놓고 이렇게 아무 준비도 안 하다니, 어쩌려고 이러지. 으아아아~ 급 패닉 상태가 되어 크루즈 여행 후기가 모여있는 카페에 가입하고, 후기 게시판을 읽을 수 있는 등급이 되려고 회사에서 틈틈히 댓글 달고 포스팅하고...ㅠㅠ '후쿠오카에서 만2세 어린이와 70세 어르신이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일곱시간짜리 여행 코스 짜기' 미션을 수행하는데 매달렸으나, 검색하면 할수록 후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미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결국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고, 구내 서점에서 '규슈 여행 가이드북' 한 권 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부산 가는 기차에서 읽으면서 정하면 되겠지!
출발 전날 밤이 깊어서야 MBC 정보 프로그램에 나왔던 하모니 크루즈 소개 동영상을 보며 (무려 700원!)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짐을 쌌다. 아무 사고도 없이, 그저 재밌기를, 제발 비는 오지 않기를, 오더라도 조금만 오기를 기도하며 정신이 반쯤 빠져서 잠들었다.
예상했듯이, 일본에 스펙타클하거나 황홀한 구경거리는 없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여행이 아니었을까 싶은 걱정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여행 사진을 정리하다가 이 사진들을 보며 나의 온갖 우려가 다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이런 사진을 얻으려고, 나중에 수안이가 커서 이런 사진들을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따뜻했던 한 순간을 느끼게 하려고 여행을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만 있어도 그냥 웃게 된다.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또 빨리 모시고 어디든지 가야겠다 싶다. 먼 곳이 아니더라도, 아버님이 이런 표정을 보여주실 수 있을 때, 가야겠다. 참 좋은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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